인간의 노화를 연구하다보면 후성유전학에 대해서도 다루게 된다. 후성유전학과 노화 유전자는 어떠한 관계를 지니고 있을까. 이번 글을 통해 깊이 있게 다루려 한다.
후성유전학과 노화 유전자
우리의 세포는 외부로부터의 손상과 내부적인 스트레스에 대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며 스스로를 유지하려는 복잡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중에서도 후성유전적 인자는 유전자 발현 조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자들이 손상에 대응하기 위해 유전체(DNA)에서 떠나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한다. 본래 꺼져 있어야 할 유전자들이 활성화되거나 반대로 활성화되어야 할 유전자들이 침묵하는 혼란이 일어난다. 이런 과정은 세포의 정체성을 흔들고 기능 이상을 초래하며 이를 후성유전적 잡음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잡음이 세포 노화와 질병의 핵심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후성유전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전자 중 하나가 SIR2이다. SIR2는 히스톤 탈아세틸화효소(HDAC)를 만들어낸다. HDAC는 DNA를 감싸고 있는 히스톤 단백질에서 화학적 꼬리표인 아세틸기를 제거한다. 이 과정에서 히스톤은 DNA를 더 강하게 감싸게 되어 RNA로 전사되지 못하게 만든다. 이렇게 특정 유전자의 발현이 억제되는 것을 유전자 침묵이라고 한다. SIR2는 특히 교배형 유전자에 달라붙어 이 유전자를 침묵시킨다. 이로 인해 세포는 교배 대신 분열을 통해 증식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DNA 손상이 발생하면 SIR2는 이 침묵 상태를 포기하고 손상 부위로 이동한다. 손상된 DNA 부위의 히스톤에서 아세틸기를 제거해 DNA가 히스톤에 단단히 붙게 하고 이 과정에서 DNA가 잘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돕는다. 이후에는 다른 수선 단백질들이 동원되어 DNA 복구가 이루어지며 복구가 끝난 뒤 SIR2는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가 교배형 유전자를 침묵시키는 역할을 재개합니다.
SIR2 단백질의 한정된 자원과 세포 노화
SIR2와 같은 후성유전적 조절 인자는 세포 내에서 한정된 자원으로 존재한다. 이는 세포가 한정된 양의 SIR2 단백질로 DNA 손상을 수선하면서 동시에 유전자를 침묵시켜야 하는 딜레마를 의미한다. 손상 부위가 많아질수록 SIR2 단백질이 여기저기로 분산되어 본래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세포 내에서 후성유전적 잡음을 증가시키고 결과적으로 세포 노화와 기능 저하를 유발한다. 흥미로운 점은 연구에서 SIR2 유전자의 사본을 추가로 삽입하면 세포 수명이 증가하고 노화가 늦춰진다는 사실이다. 이는 SIR2 단백질이 충분히 생성되어 DNA 수선과 유전자 침묵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 환경에서는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해야 하므로 SIR2 단백질의 과도한 생성은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실험실 조건에서 SIR2 유전자 사본을 추가하는 방식은 자연 진화가 제공하지 못한 인공적인 이점을 세포에 부여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정보 이론과 후성유전적 잡음
정보 이론에 따르면 노화는 세포가 손상과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후성유전적 신호 전달 인자들의 과로로 인해 유발된다. 중요한 점은 손상이 어디에서 발생하느냐가 아니라 손상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후성유전적 조절 인자들이 본래 맡은 책임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침묵되어 있던 유전자들이 활성화되고 유전체의 조화가 깨져 세포의 기능이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는 마치 세포라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악보를 잃고 혼란스러운 연주를 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러한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DNA 손상이 후성유전적 변화를 유도하는 과정을 실험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DNA를 의도적으로 끊는 기술이 필요했는데 단순히 DNA를 기계적으로 자르거나 화학적 방법으로 끊는 것은 돌연변이를 유발하거나 세포 기능을 저하시킬 위험이 있었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정밀한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했다.
이렇게 과학자들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서 노화 유전자를 연구하며 노화를 개선 시킬 방법을 계속해서 찾아내고 있다.